막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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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정말 후회하지 않아?_6 잡소리

단단해진 내 성기가 그의 손을 유혹했다. 슬쩍 그의 사타구니 사이를 곁눈질해서 보았다. 크기의 변화가 없어 보였다. 아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뭔가 허전해 보였다.

 

“저 사실 고추가 없어요.”

 

오른 손을 나한테 맡긴 채 왼손에 쥔 종이컵만 홀짝이던 기사가 내 실망한 표정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네? 무슨……”

 

나는 그의 손을 내 사타구니 안쪽으로 끌어오려다 말고 멈칫하며 고개를 돌려 그의 옆면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당혹스러운 말에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눈가의 주름과 둥근 볼을 타고 턱으로 이어진 그의 구렛나루가 섹시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발기할 수 있는 성기가 없다구요.”

 

“그럼……”

 

나의 왼손은 그의 오른손을 놓아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어중간하게 잡고 있었는데 그가 남자답게 손을 빼내었다. 고마웠다. 곧바로 오래전에 비워버린 종이컵을 내 오른손에서 빼앗아 갔다. 또 고마웠다.

 

“네, 전 트랜스젠더, FTM이에요.”

 

그는 두 개의 종이컵을 겹치면서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그 종이컵들은 그의 통통한 손 안에서 구겨졌다. 좀 전에 잡았던 그 손의 감촉을 되뇌었다. 그 역시 한 동안 침묵을 지키다 속 깊은 고백을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늘 그러셨죠. 제가 고추를 당신 뱃속에 떨어트리고 태어났다며 안타까워 하셨죠. 저 역시 잃어버린 고추에 대한 기억을 날조하며 늘 그리워했죠. 그래서 평생 그걸 찾으러 다니려고 택시기사가 되었어요.”

 

농담인 듯 진담처럼 얘기하던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눈가의 주름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분명 여자였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나보다 짧았으며 구렛나루와 턱수염을 길렀지만 그리 길지 않았고 딱 보기 좋게 다듬어져 있었다.

 

“부럽네요.”

 

긴 침묵을 깨고 건넨 나의 첫 마디 말이었다.

 

“네?”

 

“아, 아니에요.”

 

이번에는 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부러웠던 건 그의 눈가 주름도 또 구렛나루도 아니었다. 그가 몰고 있는 택시도 물론 아니었다. 그건 자신한테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였다.

 

“그럼 종로에 오신 것도 그걸 찾으려고?”

 

“네, 근데 대신 손님을 찾았네요. 허허.”

 

그는 예의 그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웃음소리가 약간 하이 톤이다.

 

“아니죠. 제가 기사님 택시를 찾은 거죠.”

 

“아, 그런 건가요? 음……, 아닌데? 제가 종로에서 손님을 기다린 거니까, 제가 찾은 거죠.”

 

이 상황에서 누가 먼저 찾은 건가라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문제로 아옹다옹하는 건 웃겼지만 그로인해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졌다. 그한테 고추가 없다는 사실이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 이래봬도 탑입니다. 허허.”

 

분위기에 휩쓸린 그가 다소 무리한 농을 던졌다.

 

“아, 그렇게 보이세요.”

 

난 진지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몇 마디 실없는 농을 더 주고받은 뒤 택시는 목적지로 다시 향하였다. 아파트 어귀에서 인사를 나눈 뒤 내리려는 찰나에 기사가 명함을 건넸다.

 

“택시요금도 안 받았고 커피도 사줬으니, 명함 하나쯤은 부담 없이 받아 주실 수 있으시죠?”

 

얼떨결에 그 명함을 받아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따지고 보니 내게 있어 그 택시는 현실 같은 환상에서 환상 같은 현실로 데려다 준 영매였다. 택시는 또다시 잃어버린 고추를 찾아서 떠났고 나는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기다리듯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렇게 마냥 기다리다보면 내가 찾아야만 할 무언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목욕탕에서 미술전시회가 열린다. '대안공간 반디' (by 치로) 음악/공연

 

부산지역의 미술문화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공간 반디이다.

대안공간 반디는 목욕탕을 미술관으로 개조했기에

목욕탕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위의 사진처럼 목욕탕 간판이 입구에 놓여있다.

이곳은 아마도 목욕비를 받는 계산대였던 것 같다.

지금은 관람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자판기에서 커피한잔 뽑아 마시면서 쉴 수 있다. 

1층 목욕탕 전시실이다.


오른쪽은 화장실이고 통로를 통해 다른 전시실로 갈 수 있다.


전시실 바닥이 목욕탕 타일 그대로인 점이 이색적이다.


2층에는 목욕탕 위에 테이블을 놓아 회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목욕탕에서 미술전시를 관람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대안공간 반디.

서울에는 홍대에 이런 아기자기한 전시공간이 꽤 있지만

부산에는 이런 공간이 고작 반디를 포함해 두 곳 뿐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그 존재가 더 의미있는 반디이다.
 

남성 관람객을 위해 한가지 팁을 알려드리자면

반디 사무실에는 미모의 여성 큐레이터 두분이 근무하고 계시니,

작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사무실 문을 두드려 보시길...

 

위치와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http://www.spacebandee.com/

 



My Salsa Story (2)- 개인적인 어쩌면 보편적인 음악/공연

예전에 함께 일했던 모 씨가 나이와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살사라는 춤을 배우러
다닌다고 할 때만 해도 난 당췌 '그것'에 관심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어색한 "율동"스러운 몸짓을 보여 뜨악한 표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남자도 떠나고 인생은 무료하고, 이대로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만 굴리다가는
신체 일부가 퇴화하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즈음, 신기하게도 그 '살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고많은 대안들 중에 왜 하필 그게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난 여전히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익숙한 인터넷 검색질을 했고,
며칠 후에 난생 처음 혼자서, 제 발로, 살사빠에 걸어들어갔다.
그렇게 2년 반쯤 된 것 같다.

꼭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춤을 추기 시작하고 2달 만에 빠에서 새 애인을 꿰찼고, 1년 남짓 동안을
만나다 헤어졌고, 그러는 사이 6개월 이상 춤을 쉬기도 했고, 그러다 다시 또 혼자 춤을 추러 되돌아왔고,
정말 또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번엔 몇 달쯤 만나다 얼마 전에 헤어졌다.
그리고 지금 난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나의 연애와 살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버렸다.

처음 살사빠에서 만났던 남자친구와 살사와 연애,혹은 살사와 섹스의 유사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었다.
남자의 리드와 여자의 팔로윙, 남자가 구사하는 다양한 패턴들과 여자의 스타일링,
잘 추는 사람도 있고 못 추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그 나름의 느낌과 스타일이 다른 것이 춤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텐션이 잘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강습을 듣고 교과서처럼 베이직을 익히고 한 단계 또 한 단계 기술들을 습득하지만,
춤의 생명은 자기 표현이다.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과 표현.

그 친구는 '인지부조화론'을 얘기했다.
두 남녀가 함께 번지점프대 위에 오른다. 수십 미터 아래의 허공으로 발을 떼야하는 순간,
두 사람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서로를 마주보며 그들은, 그 심장박동을
서로에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 믿는다.
아마도 그는 나와 춤을 출 때의 가슴떨림을 춤이 아닌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다른 일로 바빠지고 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식어가는 것과 비례해서,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줄어들었다.

그 다음 남자친구는 자기가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면 선뜻 살세라에게 춤을 신청하지 못하는,
그래서 주로 살세라들이 먼저 다가가서 춤을 신청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자기 느낌에 취해 추던 이전 남자친구와 달리, 그는 상대가 자신과 추는 느낌을 좋아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몇 번이나 데이트를 하고도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는 그에게 "날 좋아하지 않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사귀게 된 몇 달 동안, 그는 끊임없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또 다시 춤을 추는 남자를 만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이젠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계속 춤을 추는 한, 또 다시 내가 나와 마주보며 춤을 추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게 살사의 매력이다.


by 마님

p.s. 보너스 동영상 하나.
조대식과 김정윤은 너무도 유명한 살사 인스트럭터이자 커플이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조대식이 김정윤에게 프로포즈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유명한 살사 파트너들은 몇 년씩 함께 춤을 추고 공연을 하지만 춤을 떠나서는 커플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아마 밖에서 보면 좀 의아스러운 면일 것이다. 어쨋거나 그들은 프로니까.
나처럼 춤도 연애도 아마추어인 자가 뭘 알겠는가.
일렉트로닉 탱고를 삽입한 인트로와 음악에 척척 달라붙는 듯한 안무는 다시 봐도 그저 감탄스럽다. 물론 그녀의 김연아는 흉내도 못낼 턴도.


[드라마도라마DRAMAドラマ] 결혼 못하는 男子 vs 결혼 못하는 男子 TV

이번 주엔 백년 전에 쓴 글을 올립니다... 담주에 <공부의 신> vs <드래곤자쿠라> 할게요~
***
 이제는 반박하거나 웃어넘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일까요? 부모에 대한 부채감이 개인적인 바람을 넘어서는 순간에 와서는 더 이상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모른 척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열렬한 사랑으로 한다기보다는 대부분이 ‘이정도면 문제없어’ 라는 마음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뭐, ‘뜨거운 사랑의 결실=결혼’이라는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왜 저는 결혼이 썩 내키지 않는 걸까요? 말로는 환상임을 인정하면서도 남몰래 혼자만의 판타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십분 양보해서 결혼이 ‘태평양을 조각배로 함께 건너는’(MBC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씨가 이렇게 말했지요...) 동지애적 관계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결혼의 부부/가족 관계가 여전히 여자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연애는 OK, 결혼은 Well...이런 생각에 결혼을 서두르지 않은 저는 어른들 말씀처럼 무척 이기적인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부채감이 한계에 다다른지라 심각하게 결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찰나, (한때나마 총애했던) 지진희님이 나오시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도 <결혼 못하는 남자> 라니... 하!하!

 그런데 어째 전개방식이랄까 느낌이... 낯선 드라마에서 일드의 냄새가 난다싶었는데 일본에서 2006년에 방영된 드라마 리메이크였습니다. 초반 몇회는 컷바이컷으로 거의 똑같이 찍어서 아베 히로시와 지진희님의 연기가 상당히 비교가 되었었지요. 각설하고, ‘어쩌란 말이냐!’의 답을 조금이나 얻겠다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들이 제게 남긴 것을 조금 읊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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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역시 이런 드라마가 리메이크 되는 건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않게 싱글남녀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미 여러 일드에서 노처녀(?)가 일과 사랑 둘 다를 쟁취하는 이야기를 보여줬습니다만,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드물었습니다. 이건 갑자기 그런 남자들이 등장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외면해 온거죠. 주로 결혼 문제에 있어서 비난 받는 것은 조건을 따지는 여성들이었는데요 그동안 남자들은 조건없이 사랑만으로 결혼했을까요. 저와 서너살 차이의 남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할 여자는 얼굴은 못생겨도 집안은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농담이겠지요...허허-)아무튼 이미 결혼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경제적 조건이 중요시됩니다. ‘널 책임지겠어’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요. 어쩌면 이 드라마는 더 이상 결혼이 일과 사랑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에게도 지옥이라구!를 처음으로 고백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남들은 지진희가 아베 히로시보다 연기를 못한다고 하지만 저는 아베 히로시는 너무 연기를 잘해서 ‘그래 넌 혼자 살아라’ 싶을 정도로 정이 안갔지만, 지진희는 떼쟁이 7살같은 느낌이랄까 뭐 그래서 늘 있어왔던 리메이크작의 한계랄까 원작과의 비교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저 귀여운 그분만 있으면 되는 게지요). 그러나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한국판이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 일본판에서는 여자가 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으로 서로를 맞춰 죽이는 피구를 했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당신과 공을 주고 받고 싶어요...”(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이런 말이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녀를 돌려보냅니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그녀를 만납니다. 그녀 또한 장바구니를 들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묻습니다. 오늘 저녁은 뭡니까? 여자는 말합니다. 양배추쌈이요. 남자는 돌아서려다 망설이다 말합니다. 집에 찜통있습니까? 우리집엔 크고 좋은 녀석이 있어요. 야채를 싫어하는 그이지만 그녀의 집에 없는 찜통을 빌려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발전하려 합니다(그리고 끝). 그들은 이제 서로가 보완적인 관계가 되는 거죠(결혼은 할지 안할지 모르지만). 하지만 지진희와 엄정화는 이렇습니다. 그녀가 고백합니다. “좋아해요.”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그녀에게 해먹이죠. 사소하지만 여기에서 둘의 관계 발전 방향이 일본판과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려지지 않은 채 그가 원하는 밥상 한 켠을 그녀가 차지하는 것이 앞으로 그들의 관계인거죠. 게다가 드디어 그가 청혼했을 때 그녀는 그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적합니다. 와우~ 언빌리버블. 그동안 그녀는 왜 혼자 살았던 걸까요. 결혼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이를 원하는 걸까요. 그녀는 마치 그들의 부모가 원하던 바를 갑자기 모두 욕망하게 된 것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에게도 강요합니다. 강요한 적 없다구요? 아니 그럼 잠적한다는 여자가 703(703호에 살고있는 김소은을 지칭하는 말)에게는 왜 연락을 합니까. 이건 전화번호 바꾸고 술취했다고 옛애인에게 전화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구요.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나와도 살 수 없다라는 으름장인거죠. 그는 아니나다를까 703으로부터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찾아갑니다. 마지막엔 반짝이는 청혼 반지로 끝....(나다니! 아~ 90년대 <질투> 버전이네요.)

 자식의 결혼에 대한 부모의 입장도 다르게 그려집니다. 일본판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온 것은 자신의 재혼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식의 결혼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어디나 같겠지만 여기서는 어찌되었건 우선 나의 행복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문제에 걱정이상의 적극적인 액션을 보이지 않죠.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아버지가 그녀를 결혼시키기 위해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작전을 짭니다. 양가 부모의 협력으로 그들은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한국에서 결혼문제는 부모의 간섭과 영향을 더 받게되는 듯 합니다.

 엣지없게 썼습니다만,  결론은... 일본판이 한국판보다 낫다...가 아.니.라. 일본에서의 결혼문제는 두 사람의 보완적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으나, 한국판에서의 결혼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보다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쪽이 져 줘야하는 가족꾸리기에 대한 나/부모의 욕망에 초점을 두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일본판에서는 결혼의 전제 조건(보완적 관계)을 찾으려고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결혼의 당위성(아이 낳아 키우기)을 강조한다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더 수긍합니다만 만약 그런 관계가 있다면 왜 결혼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이고 후자의 경우는 일단 너무 당연한 거라고 말하니 할 말이 없네요. 그래서 뭐, 제가 얻은 건...없습니다. 훗.

by 한때 aud였던 일코


[이면지] 소설_정말 후회하지 않아?_5 잡소리

그리고는 곧바로 미터기를 꺼버렸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다녀 올테니.”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다정한 말투는 홀로 남은 택시 안을 안락하게 해 주었다. 문득, 어린 시절에 사람들로 혼잡한 시장에서 늘상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만약 엄마를 잃어버리면, 다른데 가지 말고 그 자리에 꿈쩍 말고 서있어야 돼. 엄마고 곧 찾으러 갈 테니까. 알았지?’ 다행이도 난 한 번도 어머니를 잃어버린 적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붐비는 곳에서 마냥 서 있을 기회도 얻지 못했다. 대신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마다 마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곤 했다. 꿈을 잃어버렸을 때도,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도, 하다못해 당장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를 때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곤 했다. 하지만 꿈도 사랑도 먹을거리도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쉽게 날 찾아내지는 못했다. 괜히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택시기사는 다시 날 찾아 올 것이다. 내가 택시 안에 있으니까. 마음이 약간 더 편안해졌다.

 

나는 크게 심호흡 한번을 했다. 좁은 택시 안의 방향제는 그 위에 얕게 쌓인 하얀 먼지만큼의 세월을 머금은 채 옅어진 장미향을 힘겹게 뿜어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택시기사의 체취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약간의 맥주 냄새가 섞여서 났다. 입안이 살짝 말라왔다.

 

“여기요.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나는 그가 건넨 종이컵을 받아서 얼른 입안을 적셨다. 나의 코는 인스턴트 커피 향으로 가득 차버렸다.

 

“댁에서 가족분들이 기다리시는 거 아니에요?”

 

“아, 혼자 살아요.”

 

“네, 다행이네요. 그럼 좀 천천히 마셔도 되죠?”

 

“네, 천천히 드세요.”

 

택시기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커피를 홀짝인다.

 

“종로는 자주 나오세요?”

 

“주말마다 나오는 편이에요. 자주 나오는 거죠?”

 

나는 멋쩍게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삼킨다.

 

“뭘 그 정도 가지고. 전 매일 나오는데요. 돈도 벌고 눈요기도 하고. 그러다 운이 좋으면 이렇게 예쁜 손님과 커피한잔도 하고. 허허.”

 

택시기사는 넉살좋게 웃으며 자신의 오른 손으로 내 허벅지를 한번 쓰윽 훑고 지나간다. 나는 그 손을 다시 당겨 내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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